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얼어죽어도아이스아메리카노로 GO

카노 | 어제와 같은 하루는 없다 본문

커뮤

카노 | 어제와 같은 하루는 없다

주화입마 금치 2021. 5. 25. 03:58

 

anNina

 

I don't think of the past. The only thing that matters is the everlasting present.
—William Somerset Maugham—


  카노의 짐은 엉망진창이었다. 호그와트에 처음 발 디뎠던 때와 현재의 짐을 비교하면 더욱 그러했다. 7년의 시간이 거짓말은 아니었던 탓에, 자잘한 물건부터 크게는 빗자루와 새로 산 놋쇠가 시선을 끌었다. 경량 마법을 걸고 여러 차례 짐을 다시 싸고 나니 제법 봐줄 모양새가 되었다. 검은색 가운을 입고 졸업생 모자를 썼던 것이 방금 전의 일이다.

 

  카노는 이제 호그와트 교문 밖으로 나서면, 통념적으로 호그와트에 다시 돌아갈 일 없음을 알았다. 모교를 방문하는 일이야 머글 사회에서 흔할 수 있으나, 최고의 보안을(카노는 이 문장을 말할 때마다 '이젠 최고의 보안 같은 거 절대 안 믿어'라고 생각한다) 자랑하는 호그와트는 특별한 사유가 아닌 이상 방문하기 까다로웠다. 그럼에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또 이곳에서 7년을 함께한 친구들을 만나면 좋겠다고—, 그리 생각하였다.

 

  카노는 오랜만에 부모님을 뵙고 함께 식사를 했다. 과거에는 한 번 포크를 가져간 접시엔 두 번, 시선을 주지 않았던 카노였다. 

 

  ' 5학년 때 까지는 그랬었지'

 

  카노는 가문의 재산을 제 것처럼 사용하고 예의와 체면, 흐름을 읽지 않았다. 혼혈 출신이나 머글 태생의 마법사와 친구를 하지 말라던 부모님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지 않았고, 친구를 사귐에 그 어떤 제한도 두지 않았다. 자신은 카노, 체스터이기 이전에 카노였다. 카노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좋아하며, 동시에 싫어하기도 했다. 네가 원한다면 그 말이 맞아. 그래 네가 그걸 싫어한다면 나도 싫어.

 

  그러니 분명 부모님의 말씀에도 그리해야 했는데. 카노는 냅킨으로 입을 닦고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의 없이 먼저 일어서는 카노를 향해 부모님이 무어라 입을 열었다. 언제나와 같은 잔소리, 그럼에도 날이 선 그 목소리. 카노는 호그와트 교정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식당을 떠났다.

 


  동물에게는 여러 생존 방식이 존재한다. 가령, 나무늘보는 보호색을 가지고 숲에 숨어들었다. 얼룩말은 그 무늬를 이용해 무리 지어 큰 형태가 되도록 착시를 이용하였고, 카멜레온도 마찬가지로 주변 환경에 맞도록 자신의 색을 형형색색 바꾸었다. 그리고 이는 카노의 생존 방식에 몹시 닿아있었다.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지 않고, 타인의 것을 제 것처럼 받아들여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것. 상담사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카노는 이 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너무 무겁지 않은 관계를 만들어 제가 원하는 대로 재밌는 삶을 지속할 수 있다고 자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방식은 졸업을 기점으로 유종되었다.

 

  카노는 다행히 졸업을 앞두고 많은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 자신이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던 관계에서 위로를 받아버렸다. 그래서 카노는 처음 집을 떠나 턱 없이 춥고 눅눅했던 여관에서의 하루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괜찮을 것만 같았다. 울지 않고, 혼자 나아감에 망설이지 않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카노가 그간 방학에 했던 일을 나열하라고 한다면, 혹자는 ' 어디 가문의 하인으로 고용되기라도 한 거야? '라는 답을 했을지도 모른다. 청소, 요리, 묵고 있는 손님의 스케줄 정리와 지역의 명소를 간략하게 설명해주었고 퇴근 전에는 빈 객실의 침구를 정리했다. 할 수 있게 된 일은 익숙해지기만 하면 '잘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영국의 여름은 비교적 비가 적게 내린다. 카노는 여름의 끝자락, 호텔의 주방보조로 취직하게 되었다. 이때, 카노의 연식이 열여덟이었다. 지팡이 대신 식칼을 잡는 시간이 늘었고, 빗자루는 타기보다는 쓸어내는 것에 사용했다. 종종 호텔을 방문하는 마법사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카노가 마법사. 심지어는 순수 혈통 가문의 사람이란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카노가 티를 내지 않은 것도 한몫하였고, 외형적 행색이 마법사의 신묘함과는 거리가 꽤 생긴 탓이었다. 

 

  카노는 쉬는 날마다 호텔 앞의 해수욕장에 갔다. 맨 발로 모래를 밟으며 수평선 너머를 보고 있노라면, 절대 불변하지 않을 약속이 떠올랐다. 자신이 죽어 흙으로 돌아갈지언정, 저 태양은 영원하겠구나. 어제와 똑같은 태양이 아닐 텐데도, 변함없이 떠오르는 태양에게 망설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 지금의 나는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는 할까? '

 

카노는 쓸쓸한 미소를 머금고 그리, 새벽녘을 보냈다.

 

 


NNth. NNN. NNNN

 

  우연히 사람을 구했어. 내가 잘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어떤 사람이어도 살려는 열망이 있단 걸 오늘 알아버려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어. 되도록 관여하지 않고 살고 싶었는데, 나는 … 현재를 생각할 수 있을까. 한 가지 고해하자면, 나는 내가 가진 것의 불합리함을 알고 있었어. 나의 혈통과 내 뒤에 있는 가문이 나에게 편하고 안락하게 다가왔던 때를 기억해. 나를 무시하는 이가 없었고, 나의 눈치를 보던 친구를 알고 있어. 그리고 그 불합리함으로 피해를 본 친구 또한 존재했음을 알아.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아직도 잘 모르겠어. 호그와트를 졸업하고 나서도 혈통에 대한 것은 내게 전혀 피해를 주거나 문제를 안겨주지 않았으니까. 내가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순전히 날 위해서였으니까. 그래서 … 아직도 졸업식 날 있었던 일이 떠올라. 나는 나의 신념이 없는데, 악의에 가득 찰지언정 분명 신념을 가지고 계셨던 이를 알고 있어서. 오랜만에 친구들이 만나고 싶어. 호그와트였다면 분명 떠들썩한 분위기에 금방 기분이 괜찮아졌을 텐데.

 


 

 

 

 

 

 

 

 

 

'커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노 | 0529  (0) 2021.05.29
카노 | 잠 들지 못하는 밤에,  (0) 2021.05.29
카노 | 꺾인 생의 멸시를 안고  (0) 2021.05.19
카노 | 가장 따뜻한 날에  (0) 2021.05.19
미카엘 | 로그  (0) 2021.03.0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