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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 | 052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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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 | 0529

주화입마 금치 2021. 5. 29. 17:33

 


 

  천천히 제 온기와 빛을 찾아가는 태양이 고개를 들었다. 카노는 떠오르는 태양과 비아를 번갈아 보았다. 이러고 있으면, 자신은 살아있음을 여실히 느낀다. 뺨에 닿는 바람과 코를 스치는 햇살의 내음, 그리고 찬찬히 드러나는 세상의 한 조각. 분명 입에 넣어 삼킨다면 사탕에 비할 바가 안 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 그러니 오늘도 진정, 살아있음을 느낀다. 품 안의 지팡이의 존재가 이를 더욱 단단히 굳혔다.

 

  " 이탈리아엔 이런 말이 있어. 사람은 죄를 지었는데, 이걸 속죄하기 위해서 평생을 노동한다— 뭐, 그런 말. 그래서 힘들긴해도 잘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사실 즐겁기도 하고... 내 요리를 맛있게 먹는 사람들이 좋거든. 또 새로운 요리를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내가 욕심 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일지도 모르겠네. "

 

  삶에 있어 중요한 자리 하나를 꿰차고 있는 것. 그것을 만들어내고 대접할 수 있는 지금의 위치는 카노에게 있어 약간의 용기를 불어넣었다. 내 주제에 무엇을 할 수 있겠어, 그리 바닥만 보던 카노를 조금이나마 쓸모있게 만들어주는 재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업. 아무도 카노에게서 혈통이나 개인사를 묻지 않았다. 그저 실력과 성실함, 약간의 부지런함을 요구했을 뿐. 요리의 길은 카노에게서 기회를 앗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카노, 자신이 본래 있던 세계에는 혈통과 개인사, 기타 문제로 기회를 앗아가려는 자가 존재함을 말이다. 그것은 때론 선의이기도 했고, 차별당하는 당사자에게는 선명한 악의이기도 했다. 하지만 카노는 전자의 경우가 더욱 두려웠다. 전쟁은 늘 거룩한 신의 이름 아래에 많이 행해졌다. 가장 많은 피를 흘렸고, 명목과 신념 아래에 죽어간 이들은 그 울분을 토해내지 못한 채 사라졌다. 그저 역사서에 기록된 서술 한 문장이 억울함을 토로할 따름이었다. 선의를 가장하여 혈통우월주의를 주장하고, 이를 내세우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 이들을 희생할까. 애초에 그들은 그것을 희생이라는 단어로 정의내려줄까. 카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역사서에 이것이 기록된다면 아마 다행일 터.

 

  " 그래서 더 궁금해. 분명 ... 죽음을 먹는 자들에 합류한 애들은, 자신이 옳다 생각할테니까. 후회하는 이, 강압적인 상황으로 인해 원치 않은 선택을 한 이도 분명 있겠지. 그런데 분명 ... 선택하고 결과를 마주하는 건 반대 편에 서 있을 아이들이잖아. 그 아이들이 왜 서로를 상처 입힘에 정말 한 줌의 의아함이나 망설임이 없을까—하고, 난 계속 생각하게 돼. 설득할 수 있다면 하고싶고, 꿰어낸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이 쪽으로 데려오고 싶거든. 분명 우린 호그와트에서 함께 공부했어. 같은 것을 배우고, 보고, 들었지. 같은 것을 느꼈는지 까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주어진 학업의 양과 질은 같았어. 그런데 무엇이 우리의 선택을 갈라놓았는지 궁금했거든. 가문, 주변환경, 이미 굳어져있는 사회의 통념. 그런 것들이 문제라면, 내가 깨뜨리고 싶다고 생각했고. 너는 모두를 진심으로 생각했잖아. 다정한만큼, 일이 이렇게 되어서 가장 큰 유감을 느꼈을 거라 생각해 비아. "

 

  어쩌면 비참함을 느꼈을지 모르는 너에게.

 

  " 하하, 걱정 돼? 그래도 ... 아픈 건 한달에 사나흘 정도니까. 이 정도는 정상~의 범주라고 보는데 ,아닌가 ...? 사계절 옷은 나름 ...나름 ... 아닌가. 옷이 몇 벌 없긴 해. 애초에 조리복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숙소에서는 잠옷 차림이고 ... 하하 ... 돌아가면 옷부터 사야겠네. 말 꺼내줘서 고마워 비아! "

 

  나는 말이야, 사람이 존재하는 한 전쟁이 끝나지 않을거라 생각해. 악의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에 존재하고, 선의 또한 우리의 마음에 이미 깃들어 있지. 차별은 늘 고통을 낳았지만, 그와 동시에 발전을 낳았지. 비난은 절망을 낳았으나 반대로 다른 생각을 이끌어내었고, 원망은 혁명을 낳았지. 오직 침묵만이 그 무엇도 낳지 못하였기에, 나는 여기에 왔어.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의 느낀 바를 묻고 침묵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야. 우리는 전쟁의 승패 이전에, 전쟁 이후도 생각해야만 해. 황무지에 떠오를 태양을 보지 않도록, 허무한 승리에 좌절하지 않도록.

 

  너와 나, 그밖에 다른 선택을 한 그 아이들 또한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바라. 이걸, 언젠가 말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내게 아주 조금의 용기가 더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 오늘 첫 전투라서, 조금 긴장되네. 비아, 시합에 나갈 때 마다 뭔가 ... 스스로에게 응원의 주문 같은 거 걸어주거나—뭐 그런 거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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