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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 | 꺾인 생의 멸시를 안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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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 | 꺾인 생의 멸시를 안고

주화입마 금치 2021. 5. 19. 18:28

 

Copyright ⓒ 2019 Tido Kang All Rights Reserved.

***

 

꺾인 생의 멸시를 안고

 

***

 

  졸업이 그리 멀지 않은, 서늘한 오전. 여름이 다가왔음에도 루카는 얇은 옷가지에 더 걸친 것 없이 머리를 묶었다. 6학년이 되고 마주한 것은 지극히 싸늘한 겨울이어서, 진짜 계절은 봄이었음에도 창 밖에 피어나는 꽃에 시선 하나 보내지 못했다. 도내에 여는 가게에서 처음으로 일을 했다. 밀가루를 처음으로 사서 반죽을 만들어 빵을 만들기도 했다. 집요정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고 집 밖 우물의 물을 길어와 세탁을 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모든 순간이 낯설었다.

 

  마치 자신의 삶이 아닌 것 같다고 그리 여겨졌다. 루카는 가문의 가장 비루한 별장에서 지냈다. 여행을 가지 않았으며,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편지를 받기는 했으나 보내지는 못했다. 겁 많았던 과거의 루카가 부엉이를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은 작았고, 추웠으며 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기가 들었다. 손질하지 않은 머리카락은 그 끝이 갈라져 푸석해졌고, 이것저것 일을 하다 보니 감정이 곧잘 부풀어올라 이내 터지곤 했다. 

 

  하숙집으로 나가, 일 몇 가지를 끝냈다. 이제는 적응이 되었지만, 처음 할 때는 상당히 고초를 겪었다.

 

  " 카노, 그거 끝나면 이것도 부탁할게. 이 일 까지만 하고 오늘은 퇴근해 "

 

  " 네, 고생하셨어요 아주머니 "

 

  1991년의 봄, 카노는 그 생에 처음으로 노동의 고단함을 알았다. 하숙집의 청소와 관리, 요리를 도맡게 되었는데 사람의 몸 하나로 그토록 많은 일을 할 수 있단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루카는 방학 동안 머글의 세계에서 지냈다. 그리고 때때로 집에서 온 편지를 읽었다. '너의 그 버르장머리 없는 정신과 나약함을 부수고 말겠노라'고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루카는 자신의 나약함에 쉽게 꺾였다. 온실 속의 화초는 봄의 그 옅은 냉기에 시들고 말았다. 그럼에도 루카는 살아있었다. 숨을 쉬었고, 내일을 바라보아야 했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루카를 두고 세상은 톱니바퀴 구르듯 굴러갔다. 루카는 꺾인 자신의 생을 안고 한참을 노려보았다. 이 비루한 것에 무엇이 있을까, 이 조막한 것이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 그저 부러져 나간 것에 대한 멸시가 차올랐다. 마법세계에서는 어둠의 마왕이 부활하였다는 흉흉한 소문이 돈 다지. 루카는 지긋지긋함에 자리를 정리하고 하숙집을 떠났다.

 

  집으로 가는 길, 곧 다가올 개학의 계절에 절로 탄식이 나왔다. 

 

 

***

 

Copyright ⓒ https://unsplash.com/photos/TWjCHXtti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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