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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론 페르만 | 누더기를 걸친 왕자에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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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론 페르만 | 누더기를 걸친 왕자에게.

주화입마 금치 2021. 10. 2. 00:03

 


마을 한 복판에는 화려한 보석 장식을 단 왕자 동상이 있었어요.

왕자에겐 자주 놀러 오는 까마귀 친구도 있어, 매일 즐거운 나날을 보냈답니다.

 

어느 날 왕자는 광장 어귀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보았어요.

까마귀는 왕자에게, 아이는 집으로 돌아갈 마차 삯을 잃어 울고 있다고 하자 왕자가 말했어요.

"그렇다면 내 왕관의 보석을 저 아이에게 건네줘."

 

까마귀는 왕자 동상의 왕관에서 보석을 빼서, 아이의 앞에 톡- 내려놓았어요.

아이는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답니다.


*

*

*

 

"그래서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할 것 같은데"

 

엘론이 특유의 덤덤하고 냉랭한 표정으로 이안을 보았다. 방금 전 깨끗하게 닦은 안경은 손 때 하나 묻지 않고 깨끗했다. 투명한 막 너머로 네 모습 하나 담고 있자니, 여전한 듯 여전하지 않은 그 차림새와 모습이 우울했다. 너는 이전의 이안과 닮았지만,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변화'를 안고 있었다.

 

분명 너 또한 자신만큼이나 여러 일을 겪었을 거라고, 그럼에도 오랜만에 마주한 이들을 위해 여러모로 신경 써주고 있는 것이라는 걸 짐작했다.

 

"말 안 해줄 거야. 스스로 찾아보도록 해.... 어차피 어디서 들었을 법한 동화 내용일 테니까, 결말은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지?"

 

설마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올까. 엘론이 이안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모른다고 한다면, 친히 결말까지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왜 말해 주었는지는 숙제야. 스스로 생각해 봐.'라고 말할 참이었다.

 

답답한 안대를 벗어나, 천 하나 덧 댄 이안을 보았다. 거슬리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고는 했으나, 가죽 재질의 안대가 아닌 천이기에 쉽게 헤질 것을 알았다. 거슬리지 않는 걸로 바꿨다더니, 더 손이 가는 것으로 바꿨다고 했어야지. 엘론이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구태여 입 밖으론 내지 않았다.

 

'너무 일상적인... 평화로운 주제로 대화를 하면, 전쟁 중이 아니라 정말 동창회가 되어 버릴 테니까'

 

라는 이유에서였다. 거기에 이안마저 자신에게 강한 적의를 보이지 않고, 대화를 해주고 있단 점에서 엘론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이러다간 웃어버릴 것 같아서, 오랜만에 보는 이들에게 반가웠노라- 그리 말하게 될 것 같아서.

 

"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그런 비판과 비난도... 내 계산이라면 고작 한 세기야. 100년이 지나고 나면 머글 사회에 퍼진 마법사의 혈통도 그 끝을 맞이하게 될 테고... 그럼 더 이상 비난받을 이들은 남지 않겠지. "

 

하지만 자신이 뱉은 말엔 아주 큰 오류가 있었다. '미래'를 너무 생각해버려서, '현재'의 이들을 완벽하게 외면하고 고립시킨다는 점이 그러했다. 그런 뜻에서 엘론은 이안의 사고와 신념을 존중했다. 너는 현재와 미래를 둘 다 고려하고 있구나, 하지만 두 개의 결과를 잡으려 하면 힘들 텐데. 그리 생각하며 엘론이 목도리를 풀었다. 이전까진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고작 다른 사상과 신념을 가진 이 앞에서는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졌다.

 

'당연한 거긴 한데, 왜인지 우울해.'

 

그리고 더웠다. 생각의 열이 머리에 쏠린 것인지, 엘론은 심호흡을 크게 두어 번 쉬고 다시 이안을 보았다.

 

"그렇게 되면 마법사 비밀유지 법령에... 위배가 될 텐데도?... 어쩌면, 정말 어쩌면... 중세의 비극이 다시 반복될지도 모르는 걸. 마법사는 엄격히 관리되어야 해.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기엔 너무 큰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는 걸. 부모와 자식의 문제로 끝나지 않아. 나는... 개인보다 사회를, 집단을 더 우선시해서 보게 돼."

 

그러니 학교를 정식으로 졸업한 자에게만 마법 사회는 지팡이를 허락했다. 심지어 머글 사회에서는 마법의 사용이 극히 제한되었고, 완벽하게 머글과 마법사를 구분 짓는 차별점을 내세우고 견고히 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이런 형태로 사고를 달리하고 싸우게 된 것은. 너는 모든 개개인을 생각했고, 자신은 커다란 사회와 틀을 보았다. 자신의 사고와 생각에 뒤 따르는 희생과 비판점을 알지만, 이것이 가장 '쉬운 길'이었다. 머글 세계로부터 완전히 마법세계의 문을 닫고, 단절하는 것. 그리고 한 곳에 모인 마법사들이 천천히 자멸해가는 길이 엘론이 생각하기에,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비극이지.'

 

늘 보고 사는 세상은 익숙하고, 재미라고는 하나 없지만 자신의 처지를 잘 알았다. 나는 순혈이고, 어쩌면 여러 혜택을 받아왔을지 모른다. 왜냐면 이 사회에는 머글 태생과 혼혈, 그리고 순수혈통으로 사람을 구분 지어 뒀으니까.

 

"나는 말이야, 차라리 혈통으로 구분하는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싶었어. 예를 들어... 그래. 모두가 전부 순혈이 된다면, 그럼 구태여 '순수혈통'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게 되겠지."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가는 불사조 기사단을 보며, 엘론은 때때로 생각했다. 너희들은 과연 어떤 사회와 세계를 만드려고 그 길에 선 걸까. 너희들이 바란대로 온전히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이 도래하기는 할까. 자신이 생각하는 이 쉬운 길마저도 한 세기를 필요로 하는데, 너희들의 이상향은 얼마나 견고하고 단단할지. 조금은 오만하고, 뒤틀린 생각 하나 가 머리 한 구석을 비집고 들었다. 결국 저 또한 순혈이라서, 발버둥 치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에 눌러보고 싶은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그런 어른이고 못 된 마법사 인 거지. 동화에 나온다면, 절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말 하나 듣지 못하는'

 

엘론은 머글 사회를 싫어하지 않았다. 애초에 당구와 승마선수로 활동했던 무대가 머글 사회였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머글 사회의 틈에 들어가 그들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현재 회계사가 되고 난 뒤에도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글 사회로 자주 출장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과 닿으면 닿을수록 엘론은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서로가 가진 생각이 그 '근본'부터가 다름을. 마법사는 머글에 비해 풍족했다. 마법은 만능이었으나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없었기에, 오직 식량 하나 때문에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머글 사회는 의식주를 모두 갖추기 위해 노동하였으며, 마법사가 가진 시선과 머글이 가진 시선이 달랐다. 포용할 수 있는 것들부터 차이가 났으니, 엘론은 머글과 자신을 동일선상에 둘 수 없었다. 길에 피어난 수선화와 잘 관리된 장미를 어찌 같은 가격에 팔 수 있겠는가.

 

머글사회는 '미지'였으나 미지는 곧 '위험'이었다. 엘론은 호그와트 재학 무렵에도 혼혈과 머글 태생 친구들을 보며 골똘히 생각하고는 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거나 차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엘론이 깊은 사색을 끝내고 이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은 나 역시 이해하니까.... 네게 칭찬받은 의도나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 "

 

이안의 이어지는 말에 엘론이 미소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말 네가 죽게 되면, 그건 그것대로 우스운 일이니... 네 묘비에 '날 응원하고 죽었음'이라 적어줘도 될까. 영웅이 되지 않을 거라 말하는 너지만, 네가 승리한다면 후대는 어떤 형태로든 널 기록하고 기억하겠지. 사람은 원래 과거를 딛고 나아가잖아. 너, 그리고 불사조 기사단이라는 비료로 틜 새싹 들일 테니까. 아,... 그래. 분위기를 망쳐보자면 그 새싹이 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지금의 내 소명이니까. 노력해 봐. 나 또한 널 응원할게. 불사조 기사단의 일원 하나를, 죽음을 먹는 자의 일원이 응원하겠다고... 그래. 그리 말하는 거야."

 

어쩐 지 우울한 것 같아.라고 습관적으로 말을 중얼거리며 이안을 보았다. 응원이라는 단어는 말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아주 긍정적인데, 서로가 처한 상황이 좋지 않아서 그런 걸까. 전쟁 중이라서, 그래서 우울한 걸까. 오늘은 살았지만, 내일은 정말 우리의 우스운 말처럼 죽는 이가 나올지도 몰라서 그러는 걸까. 엘론은 풀어헤친 목도리를 돌돌 말아 품에 안았다.

 

"그래... 사람은 여러 갈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낡은 사고를 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르겠네. "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악과 선의 대칭에 열광했다. 이분법적으로 나뉜 것에 열과 성을 올렸다. 전쟁에 열광하고, 결투에 열중하며 승패에 집중했다. 오직 이 사실 하나만이 머글과 마법사의 공통분모라고, 엘론은 생각했다.

 

"... 화장이라니, 오히려 그쪽이 더 드문 일 아닌가?... 우리 집안은... 가족 공동묘지가 있어서... 난 거기 묻힐 예정인데... 너희 집은 그런 거 없어?"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어서 사뭇 엘론의 표정이 진지했다. 너희 집은... 이런 게 없어? 정말로?라는 듯.

 

"나는... 레몬나무가 좋아,라고 하면 정말로?...... 되도록이면 내 무덤에 나무가 없도록 힘낼 생각이지만. 그래도 오늘... 깨닫게 된 게 있어. 내 노력과 별개로 상황은 언제나 뜻밖의 길로 가더라. 그러니까... 정말 심어줄 거라면 두 그루를 심어줘. 부모님이 각자 한 그루씩 보셨으면 좋겠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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