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노 | 그 어둠 너머
" 있잖아 사무엘, 나와 함께 죽어달라고 하면 "
카노는 저물어가는 온도를 알고 있었다. 곧 다가올 어둠은 밤을 하나의 색으로 엮어, 구분의 경계를 옅게 했다. 카노는 그 어둠이 좋았다. 구분되지 못하고 모두 뒤섞이고 마는 밤이 항상 기다려졌다. 타인과 자신의 경계는 언제나 명확하고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자신은 언제나 선을 찾아 적당히 잡아당겼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너무 팽팽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느슨하지 않게 딱 중간으로 말이다.
모든 사람과 보이지 않는 줄을 당기며 지냈다. 그것은 비단 부모와 형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카노는 모두에게 공평한 대우를 했고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어릴 적에는 아니었다. 적어도 카노가 4학년이 되기 전 까지는 어머니를 가장 사랑했다. 줄을 팽팽하게 끌어당겨 제 쪽으로 오게 만들고 싶었고, 무게는 너무 무거워 차마 저울로 잴 수 없었다. 마치 처음 화분에 씨앗을 심고 기다리는 아이처럼 굴었다. 하염없이 분무기를 당겨 물을 주었고 한 줌 그늘 없는 볕에 화분을 두었다. 그것이 사랑이라 믿었고,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노는 그 모든 과정을 걸어가면서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이라는 씨앗은 볕을 받은 적 없으며, 넘칠 것 같은 물에 잠겨본 적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기대를 충족시켜야 보답으로 주어졌다. 그것은 카노에게 불가능한 것이었다. 재능이란 그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었지, 무에서 창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카노는 모두를 사랑하되, 사랑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친절하였지만, 친절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넓은 방에서 홀로 소리치면 메아리가 돌아온다. 카노는 자신이 소리쳐도 메아리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으니까. 결국 자신에게 마저 기대하는 것이 있어, 늘 실망하고 마니까.
지독한 자기혐오는 줄을 적당히 끌고 당기는 것에 방해만 되었다. 완벽히 그 흔적을 지울 수는 없으나, 태연한 척 가장할 수는 있었다. 한 때 벗이었던 이를 곁에 두며, 카노는 다시금 보이지 않는 줄을 당겼다. 모든 관계는 이 줄을 적당히 당기고 놓아주며 완급을 조절해야 하는데, 사무엘의 경우에는 특히나 조심스러웠다. 처음에는 동질감, 이후에는 동족 혐오, 그리고 끝에 이르러서는 ….
나르키소스는 자신을 너무 사랑하였기에, 죽음이라는 어둠에 빠졌다. 카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것과 정반대의 이유로 죽음이라는 어둠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것을. 이따금 바닷속에 잠겨 가라앉고 있으면 느슨한 줄이 보였다. 카노는 그 줄을 잡아 수면으로 나오고는 했는데, 그렇게 눈을 뜨고 나면 늘 옆에는 사무엘이 있었다. 카노는 그렇게 일어난 새벽엔 쉽사리 다시 잠들지 못했다. 사무엘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카노는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었다. 이따금, 과거의 철없는 시절처럼 굴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줄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고 싶고, 아직 채 싹이 트지 못한 화분을 볕에 놓고 가득 물을 주고 싶었다. 하루 종일 화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자기와 닮았지만, 그럼에도 어스름한 새벽이 되면 깨닫고 만다. 결국 너도 타인이구나. 널 사랑하고 있음에도,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겠구나. 움켜쥔 머리카락을 들어 입을 맞추었다. 이 감정에 어찌 단 하나의 단어만을 붙일 수 있을까.
카노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줄을 잡은 채 생각했다. 그저 사랑으로 정의 내리기에는 석연치 않았다. 사랑이라면, 정말 불합리함마저 감수하고 사람을 이성으로부터 추락시키는 사랑이라면. 어째서 자신은 어둠에 발 담근 채, 사무엘과 함께 숨이 다하길 바라고 마는 것일까. 따뜻하고, 포근하다고 말하는 세간의 사랑과 자신이 손에 움켜쥔 사랑이 달라서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너와 영원히 반복될 내일이 보고 싶어. 하지만 나는 너와 함께 죽고 싶어, 내일이 오지 않도록.
언젠가 카노는 503호실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는 그녀의 애증이라고, 그리 생각하였는데. 지금이 되고 생각하면, 부인은 분명 남편을 사랑했을 것이다. 함께 죽고 싶었을 것이라고, 그 어둠에 발 담그고 싶었을 것이라고. 카노는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억측이었고, 사실은 그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카노는 지금이 되고 나서야 그녀가 가졌을 절망의 편린을 엿보았다. 사랑이라 정의 내리기에 추악한 이 감정에, 자신은 과연 어디까지 드러내도 되는 것일까.
카노가 잡고 있는 줄은, 홀로 잡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줄의 반대편에는 사무엘이 있었다. 사무엘이 줄을 놓는다면 카노는 언제라도 혼자가 되었다. 관계의 시작은 둘이 되어 시작하지만, 관계의 단절은 혼자서도 가능했다. 그리고 카노는 사무엘이 확신하지 못하는 것에 불안을 느꼈다. 이때만큼 간담이 서늘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사무엘의 신뢰는 눈이 부셨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신뢰를 보면, 거울이 있었다. 거기엔 한 없이 초라한 자신이 비쳤다. 네가 보는 나는 이렇게도 초라한데, 왜 내 곁에 있어주는 걸까. 왜 이토록 신뢰할 수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 너도 하고 있을까.
줄을 타고 오가는 것이 말뿐만이 아닌, 불안함도 섞여 있었던 것일까. 카노는 사무엘이라는 인간을 보며 종종 동족 혐오를 했었다. 자기혐오가 지독한 카노였다. 동족 혐오를 하지 않는 것이 되려 이상할 정도였다. 사무엘은 카노와 정반대의 인간이 아니었다. 사실 근본적인 부분을 놓고 본다면 호그와트의 동기들 중 가장 닿아 있었다. 카노가 사무엘을 알려고 노력할수록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카노가 사무엘에게 약속을 하면 할수록 조바심이 들었다.
카노는 저물어가는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 어둠은 사람을 하나의 색으로 엮어, 구분의 경계를 옅게 했다. 카노는 그 어둠에 익숙했다. 구분되지 못하고 모두 뒤섞이고 마는 어둠이 항상 기다려졌다. 타인과 자신의 경계는 언제나 명확하고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것은 때때로 줄이었고, 손으로 쥘 수 있었다. 자신은 언제나 선을 찾아 적당히 잡아당겼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너무 팽팽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느슨하지 않게 딱 중간으로 말이다. 그건 사무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무엘의 줄을 당기면 카노는 언제나 참담함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항상' 참담함을 느꼈다. 자신은 언제나 균형에 맞추어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체로 '가능한' 선에서 줄을 놓아주고 당기고를 반복했다. 그런데 사무엘은 그렇지 않았다. 당기고, 당겨도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카노는 사무엘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줄을 잡아당겼다. 처음에는 적당히 잡아당겨야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카노는 있는 힘껏 줄을 잡아당겼다.
세상에 절망이 있다면, 분명 이것을 절망이라 하겠지. 카노는 영원히 당겨지는 줄 너머, 사무엘을 보았다. 이게 너의 사랑이라면, 우리는 분명 어둠 없이는 맞닿을 수 없겠구나.
카노는 고른 호흡을 하며 잠든 자신의 연인을 내려다보았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방안을 가득 찼다. 새벽의 푸른빛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밤이 아니었음에도 이 순간, 카노와 사무엘의 머리색은 얼핏 비슷한 색으로 보였다. 빛의 영향 때문에 나타난 착시였다. 카노는 언제나 사무엘의 곁에서 절망을 느꼈다. 물론 지금도 그랬다. 그리고 모순되게도, 카노는 그 절망이 있기에 사무엘을 사랑했다. 사무엘의 빛나는 신뢰 너머, 초라한 자신을 마주할수록 카노는 깨닫게 된 것이다. 네가 있으면, 나는 언제까지나 나를 죽일 수 있겠구나. 네 옆이라면, 나는 너를 죽이지 않고 나를 바다에 묻을 수 있겠구나.
카노는 사랑스러운 자신의 연인 옆에 누워 다시 눈을 감았다. 사무엘이 있었기에 자신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뜨면 평범한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사무엘은 자신을 보며 웃어줄 것이고, 자신 또한 거기에 답하듯 미소를 지을 것이다. 언제나와 같은 날이겠지. 네가 있기에 다가올 내일이 두렵지 않다고, 카노는 속으로 생각했다. 빛 한 점 없는 어둠이 편했었는데, 널 사랑하게 된 이후에는 그 너머의 빛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사무엘이라는 이름 붙여진 바다에 조난당했다. 하지만 그것마저 자신에게 과분했다. 카노에게 사무엘의 이름과 손이 닿은 것은 모두 귀한 것이었다. 자신은 언젠가 이 까만 바다의 끝에 닿아 익사하고 싶었다. 너와 함께 죽을 수 없다면, 나 홀로 잠겨 죽고 싶었다. 그것이 카노, 자신의 사랑이라고. 그리 정의 내렸다. 너와 함께 있으면 빛도, 어둠도. 무엇하나 두렵지 않아서 죽음마저 혀가 아릴 만큼 달았다. 카노는, 사무엘이라는 죽음에 기꺼이 자신을 던질 생각이었다. 팽팽하게 잡아당기던 줄을 놓더라도 말이다. 네게 잠겨 죽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을 것 같았다. 자신은 이제 사무엘이 없는 내일을 상상하지 못했다.
" 넌 어떻게 할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