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 | 미카엘 바르바샤
song : AION OST Forgotten Sorrow, Reynah
*교열을 거치지 못했습니다, 너그러운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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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굴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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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순적이며, 누구나 이기적이다. 또한 다양하고 복합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다면적이다. 완벽하게 선한 사람이 있을 수 없고, 완벽하게 악한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다. 인간이 태어나 가지는 고유한 성질은 원석처럼 다듬어져 보석이 되기도 하고, 발에 차여 흔한 돌멩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미카엘도 마찬가지였다. 다듬어진 돌멩이, 반짝이는 보석과는 하등 다른 것.
미카엘 바르바샤는, 완벽하게 악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선한 인간도 아니었다. 그 증거로 피덴케에게 뒷골목을 없애야 한다 주장했으며, 윌모어에게는 계산 없이 친절을 베푸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발언하였다. 이밖에도 여러 증거가 있었지만, 굳이 미카엘의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면을 잘 드러내는 것을 꼽으라면 이 두 가지였다. 위기가 닥치면 자신을 먼저 돌아보았고, 선택권이 주어져도 자신이 최우선이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미카엘의 도움에는 늘 '이유'와 '계산'이 따라붙었단 소리이다. 자신은 이것을 직접 입 밖으로 낸 적도 있었고, 행동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미카엘 바르바샤는 세실의 말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내가 너에게 준 도움은 선의가 아니었다. 너를 걱정한다,라고 말한 것에 거짓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깨끗한 진심이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던가.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날리는 것을 보며 크게 불쾌함을 느낀 적이 있던가. 한 때의 가벼운 언질에 무슨 계산이 들어갔겠는가.
진심에도 무게가 있었다. 그리고 미카엘이 그간 세실에게 준 진심은 지독히도 가벼웠다. 도중에는 물론 무거운 진심이 닿기도 했지만 미카엘은 그 발언에 항상 틈을 두었다. 이해한다는 뉘앙스로 말을 뱉으면서도 결국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 숙제라는 말로 교묘하게 꼬아 말하였고, 행복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이기를 정당화했으면 했지. 절대 미카엘은 세실에게 온전히 바닥을 보여주지 않았다. 사람이란 얼마나 모순적인지, 호감을 가지고 싶은 이에게는 깨끗한 면만을 보여주려고 한다. 미카엘 또한 사람이기에, 새하얀 눈으로 전부 덮은 자신을 보여주고자 했다. 돌멩이를 다듬고 닦는 것처럼 말이다. 네가 원한다면 그래, 언제까지라도 녹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러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양심이라는 것도 염치없이 가지고 있어서, 이리 말을 듣다 보면 얼굴이 굳어졌다. 웃어야 하는데, 웃을 수가 없었다. 입꼬리 들어 올리는 것이 무어라고.
" 그렇다면 나도 하나 말해드리겠습니다. 내가... 그대의 상상 이상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
그러니 한다는 말이 이러했다. 구체적으로 자세히 말하지 않는 점 까지, 미카엘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고해성사를 하라고 한다면 분명 잘못했다는 말만 하였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 그렇다면 우리는 그 환경이 모두에게 동등하고... 알맞게 주어지길 바라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군인은 지키는 직업이지만, 그것을 행하기 위해 다른 것을 앗아가야 하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이 끝이 달라진 이유는 아마... 자신이 지키려 하는 것이 다른 것을 앗아가면서 까지 정당한지, 그리 생각하게 되어서는 아닐까 하고 추측합니다. "
모두의 출발선이 달랐고, 아마 이는 도착지점의 선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각자 가치관이 다르니, 왜 이리 부딪히게 되었는지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행위 자체가 오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타인을 이해할 수 없고, 공감은 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이 대화가 이어져도 미카엘이 세실을, 세실이 미카엘을 이해하고 공감하려 한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사람의 생각이란 단기간에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기에.
" 하지만 반대로 죽고 나서야 이뤄지는 것이 있다면, 많이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라지기 전에 좋은 기억 하나 정도 가지는 것이 욕심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이제와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이라곤... 서로에 대한 기억뿐이니 말입니다. "
흑백으로 나뉜 세계에도 오랜만에 활기가 띄었다. 다채로웠던 세계에 비하면 하잘 것 없었으나, 줄곧 조용했던 수면에 파문이 일었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가 있을까. 잠시간 씁쓸하고 안타까웠지만, 이는 순간이었다. 이미 무를 수 없는 죽음에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남은 이들을 다시금 보고 있노라면... 미카엘은 자신의 짐을 그들에게 넘겨준 것 같아,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을 느꼈다.
" 여행의 파트너가 나여서 괜찮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상관에게 더... 유창한 유머를 배워올 것을 그랬습니다. 그대의 생각을, 생각으로 그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
한참을 떠돌게 된다면, 우리는 감정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한 해, 두 해를 넘기며 세계의 멸망까지 지켜보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디를 여행할 수 있을까. 살아있을 적과 같은 감정을 느끼며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세계가 멸망하고, 그럼에도 지구에 밤하늘이 여전하다면. 나는 네게 별이 아름다운 지면에 누워 한참 동안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
더 이상 약속을 깰 이유가 없었고, 지킬 수 없는 상황도 아니었으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만큼은 지킬 참이다. 눈 아래에 무엇이 있건, 여기에서는 녹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의 시간은 멈추었지만, 동시에 나아갔다. 부서졌지만 부서지지 않았고, 녹았을 터인데 녹지 않았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세계에서 우리는 또 무슨 약속을 더 하게 될까. 두려움보다는 막연한 기대가 차올랐다.
" 그 의미를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세실. 내가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주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말해주십시오, 내 곁에 있어주겠다고. 나 또한 그대가 내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그 손을 잡아 드리겠습니다. 부서져 조각이 되는 이들이 늘어나더라도, 나는 그대의 곁에 있고 싶습니다. 내게 있어 지나친 사치일지라도 말입니다. 말하신다면 완벽한 착각을 드리겠습니다 세실. 우리의 의미는 이제 우리만이 정의 내릴 수 있으니. "
우리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 페이지를 확인해본다. 사람은 모순적이며, 누구나 이기적이다. 또한 다양하고 복합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다면적이다. 그리고 이는 미카엘도 마찬가지였다. 다듬어진 돌멩이, 반짝이는 보석과는 하등 다른 것. 미카엘 바르바샤는, 완벽하게 악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선한 인간도 아니었다. 미카엘의 도움에는 늘 '이유'와 '계산'이 따라붙었단 소리이다. 미카엘의 진심은 늘 바람에 불어갈 수 있을 정도의 무게를 가졌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잊을 수 있었고, 열 밤을 자고 나면 어떤 진심이었는지 조차 화자 되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다. 하지만 사람은 모순적이며, 다면적이다. 미카엘 바르바샤는 이기적이지만 동시에 사람이었다.
그랬다, 모순적인 사람이라서 가볍게 뱉어내던 진심에 무게를 두었다. 애초에 죽었으니, 더 이상 사람이 맞기는 한가? 명제부터 글러먹었다. 오류였고, 허위이며 오차였다. 그러니 이런 진심을 뱉고야 만다. 녹지 않는 눈이 되어, 네 곁에 있고 싶다고.
세실의 주먹에서 긴장이 풀렸다. 미카엘이 손을 놓으려다 말고 아래로 내려 손 끝을 살짝 쥐었다. 타인에게 닿는 것이 두려웠다. 사실 지금도 두렵다. 미카엘은 죽었음에도 살갗에 닿는 타인이 지독히도 두려웠다. 혐오가 아닌, 두려움은 오직 자신의 치부가 들킬까 하는 조바심에서 시작했다. 사실은 이 손으로 지은 죄가 있다고. 감히 닿아서는 안되는데 자신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 봄이 온다면, 모두 웃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 입으로 다음을 기약하고, 눈으로는 새 시작을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어디까지 닿을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세실. 오랜만에 나와 내기 하나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에게 봄이 올 지, 오지 않을지 말입니다. 그대가 먼저 골라보십시오. 나는 그 반대를 고르겠습니다. "
어스름하게 떠오르는 멸망의 불꽃은 곧 모두를 집어삼킬 것이다. 필연은 막을 수 없기에 필연이었고, 이치는 어긋나지 않기에 이치였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이야기는 끝이 날지도 몰랐다. 죽은 사람이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와 염원, 때때로 들리지 않을 고취를 토해내는 것뿐이다.
그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건, 우리는 계속해서 문장을 이어 쓸 터였다. 변하지 않을 등장인물과 변해가는 배경에서, 우리는 언제까지고 녹지 않을 것이다. 본래 눈은 미약한 빛으로 녹지 않았다. 미세한 빛은 눈을 얼음으로 만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우리가 얼음이 된다면, 서로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미카엘, 자신이 드러내고 싶지 않던 부분을 네가 관측해 내는 것일까. 잡은 손 끝 너머로, 약간의 떨림을 흘리고 만다. 죽었음에도 자신은 생전의 감정을 떨쳐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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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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