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

무질서의 아래에는 | 미카엘 바르바샤

주화입마 금치 2021. 2. 5. 03:15

 

song - Shiki OST: Mosaic

 

 

 

**

 

  스스로가 던진 보안경이 바닥에 부딪히며 맑고 가벼운 소리를 냈다. 아마 밟아서 부순다면 조금 둔탁한 소리가 날지도모르겠지만. 삶도 비슷하지 않았던가. 누군가의 삶을 멀리서 보고 있노라면, 마치 가볍게 보기좋은 싸구려 작품이 떠오른다. 더 자세히 파고든다면, 그리 가볍지 않은 내용임에도.

 

  보안경이 완전히 바닥에 안착하고 나서야 어수선스러웠던 감정이 가라앉았다. 기숙사 방에 예비용 보안경이 몇 개 남아있었더라. 언제나 그랬다. 추잡한 감정에 잠시 발이라도 담그고 있노라면, 현실이 멱살을 틀어쥔 채 잡아당겼다.

 

 

' 그런 감상을 할 시간이 있어? 현실을 볼 줄 알아야지 미카엘 바르바샤!'

 

 

  싸구려 보안경이라 다행이었다. 미카엘은 마른세수를 두어 번 했다. 이 나이를 먹고도 감정 하나 제대로 누르고, 추스르지 못하는 자신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결국 자만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카엘, 네가 생각하는 뒷골목은 단지 그뿐인 거야? 바닥. 떨어질 곳. 최악의 지옥.

 

 

  보안경 없이 마주한 황금빛이. 막아줄 그 어떠한 벽 없이 다가오는 속삭임이. 소름 끼치게 다가왔다. 미카엘은 의도치 않게 얼굴을 구겼는데, 그 섬뜩함 때문인지. 자신이 얼굴을 구겼다는 것조차 몰랐다. 왜 그리 미소를 짓는데도, 그 속삭이는 말 한마디가. 이토록 섬뜩한지. 마치 햇빛 한 점 없는 바다 깊은 곳에서 떠오른 거품처럼 말이다. 섬뜩함과는 또 별개로, 이런 상황이 되면 깨닫는 것이 있었다. 미카엘은 그제야 구겼던 얼굴을 바로하였다.

 

 

  뒷골목, 고작 한 단어로 정의내려진 그곳에는 여러 사람이 살았다. 웃을 줄 아는 이가 살고, 슬퍼하는 자를 위해 눈물 흘리는 이도 살고 있다. 따뜻함을 아는 이가 있고, 생존을 위해 노동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연소하는 이도 있었다. 사실 주민과 비주민은 다를 것 없었다. 근본적으로 같은 인간이었다. 거기에 사는 이들도 사람이었고, 인류이며, 그 터전 자체가 세계로 정의될 수 있기에. 그럼에도 미카엘은 뒷골목의 이들을 보면 진절머리가 났다. 아무리 그곳에 사는 이들이 사람이며, 감정을 가진 지성인이라 하더라도. 그럼에도 뒷골목의 이들은 결코 문명을 이룩할 수 없다. 왜? 굳이 의문을 가질 이유가 있던가. 너무나 뻔하잖아.

 

 

  문명의 기본이 되어줄 질서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명은 무질서위에 존재할 수 없다. 수립되지 못한 규칙의 이면에는 지옥이 있었고, 저물어진 이성의 뒤에는 ... 감히 인간이라 칭할 수 없는 짐승의 편린이 존재한다. 별 수 없이 떨어진 그 바닥과 지옥을, 그 혼란함에. 미카엘 자신은 어떤 악몽을 얻어왔던가. 그래서 였다. 미카엘은 기회가 있음에도 차마 잡지 않고, 여전히 그곳에 머물기를 자처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비웃었다. 사람들의 수만큼, 갖가지의 사정이 있다고. 언젠가 누가 그런 말을 했었는데, 미카엘이 문득 떠올렸다. 알 게 뭐야. 그런 사정을 안고도 뒷골목에 있겠다 자처하는 이들 따위.

 

 

  수십 번, 수백 번을 생각하더라도. 미카엘에게 있어 뒷골목은 그러했다. 바닥의 끝에 또 바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뒷골목'이 그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됐다. 뒷골목이 기준이어서는 언제까지고 미카엘, 자신이 두려움에 떨어야 했으니까. 고개를 숙였다. 당연하게도 시야에는 바닥이 비쳤다.

 

 

" 물론이지. 나에게 권력이 있다면, 돈이 있다면,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아마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없애버렸을 거야. 그런 곳이 존재하였다는 사실도 함께. "

 

 

  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고작 뒷골목을 없애는 것 정도로는, 자신이 두려워하던 바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이름을 가지고, 또 다른 형태로 제게 다가올 것이다. 사람은, 인간은. 발이 닿아 있고 숨을 쉴 수 있다면, 자리하는 그 모든 곳이 세계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낙원으로 불리고, 또 다른이에게는 삶의 터전이라 불리는 세계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카엘, 자신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집의 몰락으로 떨어진 그곳에 낙원은 없었다. 사람이라는 거죽을 뒤집어쓴 짐승만 있었다. 그러나 너는 모른다. 나는 너에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 바닥에 발 딯고 서 있었던 적이 있노라, 그리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네가 겪은 뒷골목의 삶이 있듯, 나는 내가 겪은 삶이 있었다. 단지 너와 나의 차이점은 한 가지였다. 피덴케, 너는 그 뒷골목의 이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 나 이외의 이들을 이해하려 한 적 없기에, 그들을 비웃는 것이 전부다.

 

 

  그저 네 눈앞에 있는 내가. 아둔하여, 밟아보지 못한 세계를 두려워하고 있노라. 그리 여겨주길 바랄 따름이다. 너와 나는 결국 타인이기에, 두려워하는 그 '근본적' 이유를 알려주기 싫었다. 알게 되면, 우리가 서 있는 타인의 '선'이 흐려질 것 같아서. 그러면 아까와는 다름 의미로 감정이 드러날 것 같았다. 이제야 알겠다. 왜 너의 황금빛 이채 서린 빛이, 이토록 소름이 돋았는지.

 

 

  젠장. 언제나 느끼지만 자신에게 닿는, 올곧게 마주해오는 시선이 두렵다.

 

 

 

" 당연한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거 말이야. "

 

 

  아, 지금은 어떤 표정으로 네게 말을 건네고 있을까. 미카엘은 고개를 들어 피덴케를 응시했다. 너를 보았다. 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

 

 

 

 

편하게 멘션으로 답해주십시오. 혹시 거슬리신 부분이나, 메타적으로 의아하신 부분이 있다면 DM으로 찾아와주시길 바랍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