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
칸 나서스
이른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제법 그칠 줄을 모른 채 창 밖을 적셨다. 칸은 손톱에 바른 매니큐어가 마르기를 기다리며 창 밖을 보았다. 출근까지는 제법 여유가 있었다. 정말 빌어먹게도 이 나라는 늘 비가 함께했다. 맑은 날을 조우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였으며, 낮에는 맑았어도 저녁엔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쏟아지기도 하였다. 일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방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였다. 모든 것에 완벽하고자 하는 칸이, 고작 수수한 우산 하나를 들고다니기 시작한 것은.
" 벌써 몇 년째 인지 모르겠군. "
내리는 비가 그치기는 하련지. 칸은 한숨을 뱉어내고는 곧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가 끼익, 썩 불쾌한 소리를 내며 밀렸다. 손톱에 칠해둔 매니큐어는 채 마르지 않았으나, 칸은 '어차피 퇴근할 때쯤이면 또 지워져 있을 테고.'같은 생각을 하며 넘겼다. 오러가 된 이후 손톱이 멀쩡한 날을 찾기 힘들었다. 오러 사무국은 늘 일손이 부족하였고 들어온 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그녀는 늘 여러 곳에 투입되어 경험을 쌓았다.
땅바닥을 구르며 지팡이를 사용하는 방법이나, 스스로 자살하려는 마법사의 입을 틀어막아 제압하는 것은 지금의 칸에게 있어 몹시 쉬운 것이었다. 처음에는 사소한 실수들에 제법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으나, 결국 칸은 완벽히 오러라는 직업에 익숙해졌다. 안온하고 평화로웠던 나서스의 그림자가 아닌, 오러라는 곳은 그녀에게 있어서도 제법 도박이었다.
" 지금 살아있는 것도 꽤 기적이지. 후후, 그래... 기적이라면 더 일어났으면 좋겠어. "
칸이 죽으면 곧 나서스도 끝이었다. 칸에게 형제자매는 없었으며, 노쇄한 칸의 부모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여력이 없었다. 사실상 나서스라는 순혈 가문은 칸이 그 계보의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칸 또한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나서스는 온전히 자신으로 인해 끝이 나야만 했다.
"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모조리 부숴버려야 마땅하지. 모두 부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가질 수 있도록. "
순혈주의에 대한 생각은 여전하였으나, 칸은 불사조 기사단과의 접촉을 원하였다. 자신이 원하는 야망은 나서스의 몰락이며 동시에 부흥이었다. 데릴사위 따위에게 넘어갈 나서스의 권력이 아닌, 온전히 칸 혼자만의 것. 그것을 위해 칸은 그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었다. 자신이 꺼리는 혈통의 이들마저 아군으로 볼 수 있었으며, 자신이 나고자란 가문마저 등 질 수 있었다.
모든 결전이 끝나고, 칸 홀로 거머쥘 영광과 찬란함을 위하여. 그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깎아, 앞으로 나아가는것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자신의 살을 내어주더라도 뼈를 취하기 위하여, 칸은 자리하였다. 평소보다 이르게 출근한 칸은 제법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만날 리 없는 이들과 조우하였기 때문이다. 한결같은 이들도 보였고, 누구인지 한참을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 마치 운명인 것 마냥 호그와트를 졸업한 이들 모두가 그 자리에 있었다. 칸은 여실이 미소를 지었다. 아아, 모조리 죽여서라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할 것이라고. 그것이 같은 학교를 다니고 시간을 함께한 이들이라 할지라도.
" 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