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상반기 공채 관련

주화입마 금치 2020. 9. 26. 19:09

 

 

  저물어 가는 노을, 조금씩 그림자가 길어지던 때. 아서는 깃펜을 들었다. 설마 하니 이렇게 편지를 받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서는 깃펜의 촉을 양피지에 두어 번 톡톡 내려치며 잠시 생각했다. 동봉되어 있는 안경 줄을 받았으니, 자신 또한 마땅히 약속했던 것을 보내며 답례를 해야 하는데...

 

  " 설마 하니 이렇게 편지를 주실 거라곤... 곤혹스럽군요. "

 

  반쯤은 진심, 또 반쯤은 해학謔 위해 했던 말이 이리 돌아올 줄은 몰랐다. 아서는 그럼에도 썩 나쁘지 않은 기분에 고개를 까딱였다. 무슨 내용으로 편지를 써야 할까 고민했던 것이 새삼스럽게도 금세 양피지 하나를 채웠다.

 

 

 

 

To. Sinclair Mare Egenbert

  귀하가 일전에 보낸 편지의 회신입니다. 서두에 앞서, 간결하고 요약된 내용만을 전달할 것이기에 추후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서면으로 직접 물어보십시오.

 

  우선 신은 전지전능한가라는 주제를 보았기에, 귀하에게 추천하고자 하는 도서가 있습니다. 머글 사회에서는 꽤 저명한,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입니다. 소녀는 실제 신에게 빌지는 않았으나, 그와 근접한 소원을 빕니다. 당대 사회에서도 현재의 사회에서도, 신이라는 단어는 늘 전지전능하며 무엇이건 이룰 수 있는 존재로 다뤄집니다. 더 길어진다면 분명 앞에서 언급한 '간결하고 요약된 내용만을 전달'하겠다는 문구에 위배될 것이기에 여기까지만 기입해둡니다.

 

  놀랍게도... 싱클레어, 그대가 이리 친구 공개채용을 거론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의외겠지만, 합격이라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합격이라는 말은 어폐가 안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친구가 되어주십시오. 따분할지언정, 불쾌한 일은 없을 거라 장담하겠습니다.

 

  그대가 준 줄은 독서용 안경에 끼워두었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건넵니다 싱클레어. 나 또한 그대에게 약속하였던 머리끈을 선물로 주겠다 했음에도 늦었기에, 이 일은 덮어두어도 괜찮을 듯합니다.

 

  방학기간 동안 매일 얼굴을 보는 것은 어려울지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직 남은 학기도 있고, 이리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나 또한... 그대가 하는 말이 다소 이해됩니다. 이는 익숙한 사물과 생물체에 대한 각인효과 때문인지 궁금하니 한동안 관련 서적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선물 감사합니다. 다시 떠오를 날에, 재회할 수 있길.

 

*시안 색, 40cm 길이의 머리끈이 동봉되어 있다. 시안 색임에도 불구하고, 라벤더의 향이 옅게 난다.

 

From. Arthur Eden Sici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