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刺股懸梁

주화입마 금치 2020. 9. 23. 12:16

 

 

 

 刺股懸梁(자고현랑) : 허벅다리를 찌르고, 머리털을 대들보에 묶는다. 분발하여 열심히 공부함을 이르는 말.

 

 

 

  아서는 제 손 위에 놓인 것을 한참 동안 매만졌다. 사파이어가 주축이 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는 브로치. 아마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이전의 삶에서 형에게 선물한 뒤 어떻게 되었는지 듣지 못했던 물건이었다. 어디에 있나 했더니 호그와트에 있었을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형은...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 돌고 도는 것이 삶의 고리라더니, 이것을 보니 딱 그 짝이군."

 

  브로치를 찾기 전, 청동독수리상의 문제로 나온 것이 있었다. 불사조의 알이 먼저일까, 불사조가 먼저일까. 가장 처음의 것을 찾는 그 문제에 아서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에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브로치가 손에 들어오니 그 질문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이 브로치는, 그러니까 형이 그동안 찾아다니던 이 물건은 놀랍게도 아서가 아주 어릴 적 형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이번 삶에서는 선물하지 못한 것이었고 시간의 축이 원래대로였다면 절대 자신의 손에 들어올 리 없는 물건인 것이다. 지난 삶과 달리 이번 삶은 시작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든 것이 기울어져 있었다. 형과의 사이는 조금 더 빨리 틀어졌고, 마법사 사회는 혈통주의가 만연했다.

 

  자신이 선물하였고, 결국 자신의 손으로 찾은 브로치를 보니 모든 것이 허탈했다. 이제는 시칠리아의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오직 아서만이 기억하는 이전 삶에 대해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할까. 다른 호그와트의 이들은 믿을 수 없었고, 어머니에겐 더욱 말할 수 없었다. 과거의 자신은 지금과 달랐다. 걷다가 뛰고, 뛰다가 넘어졌다. 모든 것이 무겁고 지금보다도 쉽게 지쳐서, 과거의 아서는 모든 것을 놓았다. 기대도, 희망도, 믿음도, 신뢰도. 태만을 삼킨 대가는 결국 형의 사라져 달란 부탁이었다. 이번 삶도 그렇게 될까. 자신에게 선택권이라는 것이 애초에 주어지긴 했던가. 브로치를 던지려다 말고, 결국 품에 넣었다. 적어도 이걸 선물하고자 했던 과거의 자신마저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

 

 

  이것은 아서에게 닿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도 그가 모를 이야기.

 

 

  헥토르는 자신의 동생을 아꼈다. 나이 터울이 무려 10살이나 났고, 무서운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단 작고 귀여운 제 동생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동생은 자신을 닮았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닮았다. 작고, 아직 말도 못 하는 아기를 보며 헥토르는 자신이 형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내가 지켜줘야지, 내가 늘 데리고 다녀야지'

 

  어른들의 시간은 계절처럼 흐른다면, 아이들의 시간은 낮과 밤처럼 흘렀다. 눈을 뜨면 또 한 뼘씩 컸고, 눈을 감을 땐 옹알이를 할 정도로 자랐다. 15살이 된 헥토르의 앞에는 5살의 아서가 있었다. 어디든 걸어가려고 그 작은 걸음을 옮기는 아이가 헥토르는 나름 똑똑하고 활발한 제 동생으로 여겨졌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늘 집을 비웠기에, 이 삭막하고 적막이 가득한 공간에서 아서와 헥토르만이 자리했다. 방학이 되면 늘 동생을 안아 들고 친구의 저택에 놀러 갔고, 집 근처의 호숫가에도 놀러 갔다. 어린 아서가 이 모든 것을 기억할까 싶었지만, 헥토르는 일단 무엇이건 다 저지른 뒤 수습했다.(놀랍게도 그는 대책 없는 성격이었음에도 래번클로에 들어갔다. 잔머리도 지혜라는 모자의 말 덕분이다.)

 

  아이들의 시간은 여지없이 빨리 흘렀고, 헥토르가 애정으로 보살피던 아서는 어느덧 10살이 되었다. 어릴 적과 달리 걸어다니려고 하지 않았고 말도 잘하지 않았다. 웃는 표정도 잘 보여주지 않았기에 헥토르는 혹시 자신의 동생이 어디 아픈 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고 지냈다. 그러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헥토르, 서재로 따라 오거라."

"네?... 어 그건..."

 

  아버지의 손에 들린 성적표를 보자 헥토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학교에서 막 배달 가던 부엉이를 잡아서 완벽하게 없애버린 것이, 어떻게 아버지의 손에 들어갔을까. 곧 서재로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아버지의 잔소리와 시칠리아 가문의 이러쿵저러쿵 하는 잔소리가 헥토르를 괴롭혔다. 아버지의 말은 늘 패턴이 있었다. 처음엔 문제의 원인에 대한 잔소리. 그다음엔 시칠리아 가문의 일원으로서 부끄럽다는 말과 그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라며 하는 잔소리. 그리고 이건 최근 들어 생긴 패턴인데...

 

"네 동생, 아서를 봐라! 이미 플라멜의 저서를 읽고 그걸 이해까지 하고 있는 녀석이다!"

"......"

"지금 우리가 얘기를 나누는 이 서재의 책을, 그 애가 몇 권이나 읽었다고 생각하느냔 말이야! 그 어린 나이에 벌써 다 읽었다고, 새로운 책을 달라고 하더구나! 너와 10살이나 차이나는 네 동생이 말이다!"

"그... 그래도, 동생한테 너무 부담 주지 마세요. 아직 어리고..."

 

  바로 동생과 관련된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헥토르는 이 시간이 가장 끔찍했다. 나머지 잔소리는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동생 얘기만 하면 왜 이렇게 속이 울렁거리는 것인지. 이 날을 기점으로 헥토르는 아서와 조금 거리를 두었다. 아직 어린 자신이, 혹시나 은연중에 동생에게 실수를 할까 봐.

 

'나는 아직 어리잖아.... 이런 자괴감을 안고 그 아일 마주할... 자신이 없어.'

 

 

  가족으로서 필요한 소통이 부재되었고, 연락도 뜸해졌다. 헥토르가 간과한 것은, 아서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의젓하기는 하나 아직 어리단 점이었다. 아서는 헥토르가 자신을 외면한 그 날로부터, 꾸준히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자 했다. 이 삭막한 집에서, 형이 다시 자신에게 와주길 바라며. 그래서 였다. 호그와트에 입학하던 날, 아서는 역에 오지 않은 형을 위해 아버지께 부탁했다.

 

 

"이거, 형에게 전해주세요."

"... 아서, 그 녀석은 네 걱정 따윈 안 하는 녀석인데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아니에요. 원래 마법부가 바쁜 거 잘 알고 있어요. 아버지도 힘들게 시간 내신 것도 알고요.... 감사합니다. 방학 때 뵙겠습니다."

 

 

 

 

 

  헥토르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브로치를 한참 동안 보았다. 사파이어가 딱, 아서를 떠올리게 했다. 그로부터 7년, 헥토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마법부 사고와 재난부에서 나름 실전 실력을 발휘했고, 조금 더 권력의 중심이 되는 부서로 이동하기 위해 공부에도 매진했다. 언젠가 아서의 앞에 서게 되었을 때는, 당당하게. 그리고 떳떳하게 웃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과거, 아서를 업고 온 동네를 쏘아다니던 철부지 마냥.

 

  그러나 아버지의 욕심은 과했다. 시작은 있었으나, 그 끝이 없었다. 마치 목적을 잃어버린 배 마냥, 계속해서 표류했다. 정착과는 거리가 멀었고, 등대를 보더라도 지나쳐버렸다. 헥토르는 곧 알았다. 시칠리아라는 이름의 배는 반드시 침몰할 것이라고. 아버지의 욕심은 제 동생에게까지 뻗어갈 것이라는 것 또한, 그간의 사회생활로 헥토르는 알고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버지에게, 아서의 재능이 조금이라도 눈에 띈다면 필시 가라앉는 배에 그 아이마저 태우고 침몰할 것이라고. 헥토르는 소통의 부재를 해결하지 못한 채 아서를 급히 제 개인 저택으로 보냈다. 거처를 옮기게 한 뒤엔 모두와의 연락을 끊도록 했다. 아이가 어떤 오해를 하고 있더라도, 그럼에도 헥토르는 아서가 중요했다. 침몰하는 시칠리아의 무게를 아서에게 씌우고 싶지 않았다.

 

" 아버지가 널 찾아."

" 네가 예전에 썼던 글을 읽으신 모양이더라."

" 아서, 부탁이야."

" 너는... 다 가지고 있잖아?"

" 제발, 제발... 시칠리아의 이름을 버리고... 내 눈앞에서, 아니 영국에서 사라져 줘."

 


  연기에 재능은 없지만, 헥토르는 알고 있었다. 제 동생이 얼마나 순진하고 사람을 잘 믿는지. 인간 불신이라 말하고 다니는 듯했지만, 아서는 늘 자신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래서 태만한 척 가장하였고, 이제까지 자신의 모든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니 마지막 남은 부탁을 해야 했다. 권력과 명예만이 삶의 지표가 된 인간에게 잡히기 전에, 너라도.

 

"... 원한다면, 정말 유령이 되어줄 수 있어. "

 

"!!! "

 

" 앞으로 찾아오지 않아도 돼. 그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

 

 

  시일은 급했고, 일의 수습을 위해 헥토르는 한동안 저택을 찾지 못했다. 아서가 그저 잘 망명하였기를, 그리 짐작하며 지냈다. 그리고 아서가 사라지겠다 말한 그 날, 헥토르는 브로치를 잃어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마냥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은 채.

 

 

 

 

 

 

 

 

  

**

 

 

 

 

 

 

 

 

  <*이건 약간의 정리 및 사담이겠네요. 아서는 형에게 브로치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에 헥토르는 "잃어버렸다"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잃어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으나, 아서가 가족에게 정을 가지지 못하도록 형이 내친 것이었죠. 아서는 기차역에 형이 오지 않았을때 반신반의 했으나, 브로치를 잃어버렸다는 말을 듣고 결국 가족으로서의 기대를 놓습니다. 이것은 회귀 전의 일로, 아서에겐 결코 닿지 못할 이야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