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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urdity

주화입마 금치 2020. 9. 18. 20:01

 

 

 

 

  그날의 아서도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방학을 맞이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났고, 정해둔 양 만큼의 공부를 했다. 해가 머리 바로 위에 서기 전에 식사를 준비하여, 텅 빈 식탁에서 홀로 식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공부, 식사, 공부, 가끔 개인적인 흥미가 동하는 독서, 끝으로 취침. 그런 단조롭고, 어찌보면 톱니바퀴 같던 일상이 이어졌다. 아서는 오늘도 별 다를 것 없을거라 여겼으나 텅 비어 있어야 할 식탁에는 아버지와 형이 자리했다. 애초에 둘은 미소가 어울리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니 아서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나보구나하고.

 

" ...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신중하게 ... "

" ... ... 아버지, 그 일은 어떻게 무를 수 없지 않습니까! 괜히 저희를 끌어내리려고 수작을 부리는 겁니다. "

" 조용히 해! 그 일엔 너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어. 그래, 네가 아니었다면 그때 ... "

 

  둘은 진전없는 실랑이를 이어갔고, 먼 발치에 서 있는 아서는 마치 유령인 것 마냥 그 모든 것을 보고 들었다.별로 유익하지 않는 대화를 재조립하니, 아서는 손쉽게 그들의 갈등을 알아냈다. 혈통차별이 만연한 현대 마법사회에서, 아마 그의 아버지는 머글여성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것으로 책을 잡인 듯 했다. 그리고 거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제 형이라는 사실(놀랍게도 혼전임신이었다는 사실을 아서는 이 순간 의도치 않게 알았다.)이었다. 물론 그런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며 역정을 부리는 아버지가 썩 좋은 눈으로 보이진 않았다. 애초에 원초적인 원인은 아버지가 아니었던가. 아서는 기껏 식사를 하려고 옮겼던 발걸음을 돌렸다. 3학년 무렵, 자신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어머니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개인 서재를 마련해주셨다. 서재는 높은 책꽂이와 화분, 테이블 하나와 가죽소파가 전부였지만 아서는 그것을 썩 마음에 들어했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신이 계획한 일정을 처리함에 있어 개인서재는 몹시 뛰어난 공간이었고 이를 싫어할 이는 드물다고. 아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테이블 위에는 반쯤 먹다 관둔 쿠키가 있었기에 아서는 심심찮게 입가심을 했다. 물론 식사 대용으로는 허전함이 있었지만.

 

  똑똑, 묵직한 노크소리에 쿠키를 먹던 아서가 입가를 닦았다.

 

" 아서, 얘기좀 하려고 올라왔단다. "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방금까지 식당에서 형과 실랑이를 벌이던 아버지였다. 아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고개만 들어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동안 시칠리아 가문의 입지를 다진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아버지는, 그 얼굴이 퍽 수척해보였다. 아서는 알량한 권력과 입지를 얻고자 기민하게 움직이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서로 이해하고자 노력한 적도 없었지만, 이미 그들이 가진 가치관이 너무나 독선적인 탓이었다. 아서는 제 서재에는 의자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어찌할까 눈을 굴렸다. 

 

" ... 그럼, 밖으로 나가서 얘기하시겠습니까? "

 

  아서는 의자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아버지께 상기 시켜드리고자, 성심 껏 곁눈질로 테이블을 보았다.

 

"밖에는 어차피 헥토르가 있으니 여기서 얘기하는 게 좋겠구나."

 

  아버지는 그대로 서재를 걸어, 창가에 다달랐을 무렵에서야 발걸음을 멈추었다. 창가를 쓸어보는 손에는 칠흑같이 새까만 가죽 장갑이 눈에 띄었다.

 

" 아서. "

" 예, 아버지. "

 

  로만은, 그러니까 아서의 아버지는 잠시 옅은 숨을 내쉬더니 마저 입을 열었다.

 

" 네가 헥토르의 견제 때문에 성적을 정정하고 있단 사실을 알고있단다. "

" ... 오 .. 음 ... "

 

  아서는 잠시 침음을 흘렸다. 제법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를 보태어 교수에게 성적정정을 했는데 어디서 새어 나간 것일까. 그 뒤 이어진 내용은 꽤 단조로웠고 아서의 예상대로였다.

 

"  ... 그러니 앞으로 구태여 헥토르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좋단다. 네가 가져올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결과를 보여주렴 아서. ... 너도 마법부에 들어와야 시칠리아가 더 굳건해진다는 것을, 이미 그 영석한 머리로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본다. "

 

  공부에 열과 성을 다해라. 최선의 결과를 보여달라. 형은 아둔하니, 신경쓰지 말고 공부에 매진해라. 마법부를 목표로 해라. 시칠리아의 입지를 굳힐, 재능을 피워보아라. 아서는 아버지의 말을 대충 요약해보았다. 조악하기 그지없는 인간, 다른 친척들은 감히 욕심도 내지 않는 것을 아버지 홀로 고집하고 있었다. 말을 마친 아버지는 움푹 패여 들어간 눈으로 아서를 한참동안 응시하다 나갔다. 서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에 휩싸였다. 아서는 쿠키를 마저 집어 입에 넣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유명한 위인의 자서전에 나왔던 말인데,

 

  ' 사람은 가끔 행복하고자 돈과 권력을 손에 쥐려한다. 하지만 막상 돈과 권력을 손에 쥐고자 노력하는 순간, 사람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은 행복이다. 유토피아가 허구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며, 인간의 삶이 결코 모순이 아니고서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흔한 역설 중 하나이기도 한다. '

 

  꼭 제 아버지의 모습이지 않은가. 시칠리아는 빠른 시기 안에 파훼될 것이다. 아서 본인이 가진 재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대단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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