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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線과 선善에게.

주화입마 금치 2023. 10. 9. 18:14

나비보벳따우~ 노래불러주는 이선이~ 

Piano in U -  나비보벳따우

 

 


 

 

 

 

 

  그저 거기에 존재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존재함, 그 이상도 이하도 없어서 한참을 한곳에 머물렀다. 정확히는 머물렀다기보단 존재했다. 누가 원해서인지, 자신이 원해서인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존재하는 것, 그리고 부가적으로 따라붙는 기다림 뿐이었다.

 

  그래서 뜻밖이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있을 곳을 내어줬다는 점이 낯설었다. 자신에게 이름을 건네준 신은 겉으론 정화의 신이 명명되었으나 그 속은 저주의 신이라고 했다. 그걸 제외하더라도 한순간에 환경이 바뀐 것이 낯설었다. 눈앞의 신도, 지면에 발 딛고 서 있는 감각도 모두 자신에게 설면히 다가왔다. 잇세라는 이름은 생각외로 그 무게가 무거워서 마음에 들었지만 말이다. 낯선 것투성인 와중에도 이름 하나 가지고 있으면, 제법 그 낯섦조차 받아들일 만 했다. 그래서 잇세는 처음으로 웃었다. 덤덤한 낯에 처음으로 웃음이란 표정이 추가된 날이었다. 물론 자신의 앞에서 여기는 거실이고, 저긴 현관. 이리 말하며 집을 설명하는 자신의 신님은 보지 못한 표정이지만.

 

  신과 신기의 나날은 언제나 평온하고 또 평화로우며 단조로웠다. 겨울엔 마당의 눈을 치웠고 봄에는 화단에 물을 주었다. 여름엔 시끄럽게 우는 매미 소리에 정신 나가겠다며 거실 바닥에 누워 뒹구는 엔을 대충 이불로 묶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잇세는 엔을 냉장고에 넣었다. 정확히는 냉장고 문을 열어둔 채 엔의 상반신만 냉장고에 넣은 채로였지만.— 가을이 오면 떨어지는 낙엽을 한 쪽에 치워두고 장을 보러 나갔다. 신기가 된 잇세의 나날은 생전에 어찌 살았는지 궁금할 정도로 규칙적이고 단조로워서 퍽 재미가 없었다. 거기다 성미는 급하지 않았음에도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아 자신의 신인 엔에게도 매정했다. 이를 받아주는 엔도 신기할 따름이었지만.

 

  "이쯤 되면 네가 내 신기가 맞는지, 내가 네 신이 맞는지 의아할 정도야 잇세."

  "그 말이 너무 늦게 나왔다고 생각한다만 엔."

 

  잇세가 이름을 받고 한 해가 지났는지 두 해가 지났는지. 흘러가는 시간이 무뎌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은 제법 투덜거리면서도 꼭 식사는 함께했다. 그러기로 약조한 것도 아닌데 시간이 되면 잇세는 밥을 차려 식탁에 올려두었고, 엔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어제도 그러했고 오늘도.

 

  "왜 나한테 져주질 않나 모르겠네 내 신기는"

  "나는 늘 네게 져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엔…, 가령 지금만 하더라도 말이다."

 

  엔이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잇세를 바라보자, 한숨을 푹 내쉰 잇세가 젓가락으로 반찬을 가리킨다.

고기, 고기, 고기, 채소가 곁들어진 고기 그리고 다시 고기. 종류가 다른 고기반찬과 채소가 '가미'된 수준의 반찬이 하나.

 

  "아…"

  "어느 신님이 고기반찬이 아니면 식사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말이지. 이래도 내가 네게 져주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 엔?"

  "… … 지금 이런 말이 문제인 거라고 잇세."

  "?"

 

  이번엔 잇세가 모르겠단 표정으로 엔을 보았다. 

 

  "됐어. 내일은 나 온종일 약속 있어서 안 들어오니까 밥은 네가 먹을 만큼만 해."

  "어디에 가는 거지? 나는 … 안 가도 되는 건가?"

 

  "아, 음 …"

  "…왜 말을 하다가 마는 거지?"

  "… 네게 시킬만한 일이 아니어서. 근데 이거 언제까지 말해야 해? 이러다 밥 다 식겠는데."

 

  그 말을 끝으로 잇세가 무어라 더 말 하려는 입을 달싹이다,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그날의 '식사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종종 이럴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

 

  '나에게 시킬만한 일이 아니라니. 또 노라를 찾아갈 일이 있나보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잇세는 자신의 신에게 선을 느꼈다. 왜 긋는지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한계와 무능을 조우하는 순간은 불유쾌한 것이었다. 이 감정마저도 이름을 받은 신기인 자신에겐 사치였다. 언제나 그리 치부하였음에도 오늘은 유독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식사가 끝난 자리를 정리하면서도 괜히 방으로 돌아가는 엔의 등을 한참 보고만 있었다. 자신의 신은 무르고 물러서 그냥 지나갈 일에도 손을 내밀곤 했다.

 

  '그냥 지나쳐 가도 될 내게 이름을 준 것처럼'

 

  그러곤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은 선善하지 않다며 선線을 긋는다. 이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상에서 잇세가 놓지 못하는 긴장 하나를 말하라고 한다면 이것이었다. 자신의 신이 가진 두 개의 <선>을 말이다.

 

  "아, 잇세. 내일 입고 나갈 옷은 네가 골라 줘"

"그래. 알겠으니 내일 깨울 때 제대로 일어나라 엔."

 

  식탁을 다 정리한 참에, 문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민 엔이 그리 말하곤 쏙 들어갔다. 잇세는 언제 땅을 팠다는 듯 흠…, 작은 콧소리를 내곤 부엌의 불을 껐다. 긴장은 언제나 이어질 테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이 무료한 일상이 계속된다면 잇세는 그걸로 만족했다.

 

  그저 거기에 존재했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존재함, 그 이상도 이하도 없어서 한참을 한곳에 머물렀었다. 정확히는 머물렀다기보단 존재했었다. 누가 원해서인지, 자신이 원해서인지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젠 괜찮았다. 할 수 있는 건 이제 엔의 곁에 그저 존재하는 것, 그리고 때때로 그가 무료하지 않게 잔소리나 하며 머리를 빗겨주는 것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엔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자신이 그걸 바라니까. 

 

  잇세는 선線과 선善을 가진 자신의 신님에게 오늘도 좋은 하루였기를. 그리고 내일도, 앞으로의 나날도 좋은 하루가 계속되기를. 기도해보았다. 비록 그가 들어줄 법한 종류의 기도가 아님에도.